카자흐스탄이 코인 투자자에게 3년간 세금을 받지 않기로 한 이유
해외로 빠져나간 암호화폐 자산을 국내 제도권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정책 실험
카자흐스탄이 암호화폐 시장을 다시 키우기 위해 파격적인 세제 카드를 꺼냈다. 개인이 디지털자산 거래를 통해 얻은 소득에 대해 일정 기간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해외 플랫폼을 이용하던 투자자들을 자국의 인가 거래소로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번 정책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단순한 투자자 세금 감면이 아니다. 과거 비트코인 채굴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심각한 전력 문제를 경험했던 카자흐스탄이 이번에는 세제 혜택·거래소 규제·에너지 정책을 함께 손질하며 디지털자산 산업 재건에 나섰다는 점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대상도 상당하다. 해외를 포함한 비제도권 플랫폼에 흩어져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 100만 개의 암호화폐 지갑을 국내 규제 체계 안으로 이동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한때 세계적인 비트코인 채굴기지였던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과 암호화폐 산업의 인연은 최근 시작된 것이 아니다.

2021년 중국이 비트코인 채굴을 강하게 제한하자 값싼 전력을 찾아 움직이던 글로벌 채굴업체 상당수가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에너지 비용과 넓은 부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카자흐스탄은 짧은 기간에 세계적인 비트코인 채굴 거점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난 전력 사용량이 문제가 됐다. 노후화된 전력망이 채굴시설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 불안까지 나타났다.
정부가 채굴업체의 전력 사용과 디지털자산 관련 규제를 강화하자 사업장을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업체도 늘었다.
이번 정책은 이러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암호화폐 산업을 다시 제도권 안에서 성장시키려는 두 번째 시도에 가깝다.
개인 코인 수익에 3년간 소득세 면제 추진
새 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개인 투자자에 대한 세제 혜택이다.
카자흐스탄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개인의 암호화폐 거래 소득에 대해 3년 동안 소득세 부담을 면제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대신 모든 암호화폐 거래가 무조건 혜택을 받는 구조는 아니다.
사기나 자금세탁 등 불법 행위와 관련된 자산이나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서비스를 통해 운용되는 일부 자산은 보호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결국 정부가 원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투자자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대신 자산을 신고하고, 감독 가능한 거래소와 금융 시스템 안에서 거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목한 ‘100만 개 지갑’의 의미
카자흐스탄 당국이 이번 정책에서 주목하는 숫자는 약 100만 개다.
자국민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암호화폐 지갑 규모인데, 국내 인가 거래소에 등록된 이용자와 비교하면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 자산이 해외 거래소나 규제 밖 시장에서 계속 움직이는 것보다 국내 라이선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편이 유리하다.
거래 흐름을 파악하기 쉬워질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거래소 산업과 관련 금융 서비스가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스타나국제금융센터(AIFC)는 디지털자산 기업에 대한 별도의 규제 환경을 제공하면서 카자흐스탄의 금융 혁신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세금 면제 정책은 해외 투자금을 새로 끌어들이는 정책인 동시에 자국민의 디지털자산을 제도권으로 되돌리는 정책이라는 성격도 강하다.
채굴 전력 문제에는 ‘버려지는 가스’ 활용 카드
정부는 과거 암호화폐 산업 확대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전력 문제에도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핵심은 기존 국가 전력망에 채굴 수요를 무조건 추가하는 대신 석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전 부수가스 등을 활용해 별도의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유전에서는 원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함께 발생하는 가스를 경제성 등의 이유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에너지원을 채굴시설의 발전 연료로 활용한다면 국가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면서 채굴 산업을 운영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즉 카자흐스탄은 과거처럼 저렴한 국가 전력을 기반으로 채굴업체를 무작정 확대하는 모델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금이 없어지면 해외 투자자들이 돌아올까
세제 혜택은 강력한 유인책이지만 투자자의 플랫폼 선택을 결정하는 유일한 조건은 아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이용할 때는 세금 외에도 거래 유동성, 원화와 같은 법정화폐의 입출금 편의성, 거래 수수료, 은행과의 연결, 자산 보관 안전성, 거래 가능한 코인의 종류 등이 중요하다.
특히 대규모 투자자에게는 필요할 때 원하는 가격으로 자산을 사고팔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이 중요하다.
해외 대형 거래소가 이러한 부분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면 세금 혜택만으로 이용자를 국내 플랫폼으로 이동시키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의 정책 성공 여부는 ‘세금을 얼마나 깎아주느냐’보다 ‘국내 거래소를 얼마나 경쟁력 있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규제가 두 갈래로 나뉜 점도 풀어야 할 숙제
카자흐스탄 디지털자산 시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아스타나국제금융센터를 중심으로 적용되는 규제와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일반 법률 사이에서 디지털자산의 법적 지위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서로 다른 규정과 절차를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세금 면제 대상이 어디까지인지도 명확해야 한다.
암호화폐와 연계된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디지털자산의 정의를 지나치게 넓게 설정하면 원래 정책 목적과 관계없는 자산까지 세금 혜택을 요구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만들면 새로운 서비스와 금융상품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
3년 뒤 세금이 다시 부과될지도 중요하다
투자자라면 면제 기간 자체보다 면제 종료 이후의 제도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3년 동안 세금이 없더라도 이후 갑자기 높은 세율이 적용되거나 규제가 크게 바뀐다면 장기 투자자와 관련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이 커진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면제 기간 종료 이후 적용할 보다 단순한 과세 체계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디지털자산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조건 가운데 하나는 세율의 절대적인 수준보다 규칙을 미리 예상할 수 있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다.
카자흐스탄의 목표는 ‘코인 천국’보다 제도권 시장 확대
이번 정책을 단순히 암호화폐 투자자의 세금을 없애주는 조치로만 해석하면 전체 그림을 놓치기 쉽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원하는 것은 해외와 비인가 시장에서 움직이는 디지털자산을 국내에서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금융 생태계로 이동시키는 것에 가깝다.
세금 면제는 이를 위한 유인책이고, 에너지 정책은 채굴산업을 다시 성장시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AIFC와 인가 거래소는 자산이 실제로 들어올 제도적 통로가 된다.
과거 카자흐스탄은 값싼 전력을 앞세워 세계적인 비트코인 채굴국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전력망 부담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이번에는 접근법이 달라졌다.
‘채굴업체를 많이 유치하는 국가’에서 ‘암호화폐 자산과 거래를 제도권 금융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국가’로 전략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약 100만 개로 추정되는 암호화폐 지갑 가운데 실제로 얼마나 많은 자산이 국내 인가 플랫폼으로 이동하는지가 이번 정책의 성패를 판단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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