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범죄, 온라인 넘어 현실로 번졌다…투자자 노린 강도·납치 확산
가상자산 범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거래소 해킹이나 피싱, 투자 사기처럼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범죄가 주로 주목받았다면 최근에는 가상자산 보유자를 직접 찾아가 자산 이전을 강요하는 물리적 범죄가 늘어나는 모습이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상자산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생한 납치·감금·강도 등 이른바 ‘렌치 공격(Wrench Attack)’을 통해 탈취된 자산은 3,000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연간 피해 규모가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전체 가상자산 범죄 규모에서는 여전히 해킹이나 사기 같은 사이버 범죄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상자산 투자자를 직접 노리는 ‘렌치 공격’이란
렌치 공격은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해 암호화폐 또는 지갑 접근 권한을 넘기도록 강요하는 범죄를 의미한다.
일반적인 금융자산과 달리 개인 지갑에 보관된 가상자산은 개인키나 복구 문구 등을 확보하면 비교적 빠르게 다른 지갑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블록체인 거래 특성상 이미 완료된 전송을 임의로 취소하기도 어렵다.
범죄자들이 이러한 특징을 이용해 디지털 시스템을 공격하는 대신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 자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범행 전 피해자의 자산 규모와 거주지 등을 파악하는 과정에서는 데이터 유출이나 소셜미디어 정보, 내부 정보 등이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가상자산 보안의 범위 역시 단순한 지갑 해킹 방지에서 개인 신상과 자산정보 보호까지 넓어지고 있다.
상반기 관련 사건 증가했지만 실제 탈취 성공률은 하락
체이널리시스가 올해 6월 말까지 확인한 전 세계 폭력 관련 가상자산 사건은 46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40건보다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범죄 시도가 모두 실제 자산 탈취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확인된 사건 가운데 피해자가 실제로 자산을 넘긴 사례는 12건으로 집계돼 성공률은 약 26%에 머물렀다. 2024년 67%, 2025년 49%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아졌다.
반면 실패한 갈취와 차단된 송금, 이후 회수된 자산까지 포함하면 올해 상반기 관련 자산 규모는 약 1억7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목할 부분은 범행 장소의 변화다.
과거에는 피해자를 납치해 가상자산을 요구하는 형태가 대표적이었다면 최근에는 피해자의 집에 직접 침입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가정침입형 사건의 비중은 2023년 약 26%에서 올해 상반기 37% 수준까지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자들이 훔친 코인을 옮기는 방법도 달라졌다
탈취 이후 자금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도 범죄 조직의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범죄자는 탈취한 가상자산을 중앙화 거래소로 곧바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주요 거래소는 고객확인 절차와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이러한 이동 경로는 추적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조직적인 범죄자는 탈중앙화거래소나 블록체인 브리지 등을 이용해 자산을 여러 네트워크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사용한다.
여러 단계의 거래를 거치면서 자금 흐름을 복잡하게 만들어 추적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다.
일부 사례에서는 기존 불법 자금세탁 네트워크와 과거 거래 흔적이 있었던 주소로 자산이 이동한 정황도 분석됐다.
다만 블록체인상에서 특정 지갑과 자금 흐름이 연결됐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지갑 관계자가 실제 폭력 범죄에 참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온체인 거래 기록과 현실 범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입증하려면 별도의 수사가 필요하다.
해킹 위험도 여전하다…물리적 범죄와 동시에 확대
가상자산 범죄가 오프라인으로 확대됐다고 해서 기존 사이버 공격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체이널리시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해킹으로 발생한 피해 규모는 약 34억 달러, 각종 사기 관련 피해는 약 170억 달러로 추산됐다. 랜섬웨어 피해 역시 약 8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
하드웨어 지갑이나 관련 소프트웨어의 취약점을 노린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결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두 종류의 위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온라인에서는 개인키와 계정 정보를 보호해야 하고, 현실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가상자산 규모와 지갑 정보를 불필요하게 노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상자산 관련 강력범죄가 급증한 배경
국가별 상황에서는 프랑스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체이널리시스 자료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프랑스에서 공개적으로 확인된 관련 사건이 30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전체 기간에 확인된 19건을 이미 넘어선 규모다.
프랑스 당국이 파악한 사건 범위는 이보다 더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가상자산 보유자를 노린 범죄가 증가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과거 고액 가상자산 보유자의 이름과 주소, 연락처, 자산 관련 정보 등이 포함된 세금 자료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만약 범죄 조직이 이런 자료를 확보한다면 무작위로 피해자를 찾는 대신 상당한 가상자산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선별할 수 있다.
다만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개별 강력범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라는 점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상자산 보안의 핵심이 ‘지갑 보호’에서 ‘신원 보호’로 확대
이번 범죄 증가가 던지는 중요한 변화는 가상자산 보안의 개념 자체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하드웨어 지갑이나 이중 인증을 사용한다고 해도 범죄자가 투자자의 실제 신원과 거주지, 자산 규모를 파악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투자 수익이나 가상자산 보유량, 지갑 화면 등을 공개하는 행동은 자산정보와 개인 신상을 연결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거래소·세무 서비스·가상자산 관련 기업 역시 고객의 이름과 주소뿐 아니라 자산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정보를 보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코인 보안’만이 아니다
가상자산 시장이 성장하면서 범죄 방식 역시 함께 진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거래소나 블록체인 시스템을 공격하는 것이 주요 위험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많은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가’를 찾아내 직접 접근하는 범죄까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에게 필요한 보안 역시 비밀번호 관리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개인키와 복구 문구의 분산 보관, 자산 규모에 대한 과도한 공개 자제, 개인정보 노출 최소화 등 현실 세계의 보안까지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국 최근 나타나는 렌치 공격 증가는 가상자산 시장에서 새로운 보안 문제가 등장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디지털 자산을 지키는 것만큼 그 자산을 누가 보유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문제도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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